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비록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903년에 태어난 호로비츠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클래식 피아노의 거장인데, 사실 20세기 뿐만 아니라 온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서 그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꼽는 의견도 많다. 또한 피아니스트들이 뽑은 최고의 피아니스트에도 거의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말 그대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같이 이름이 논의되는 사람들을 보면 라흐마니노프, 루빈스타인, 리히터 등등 말 그대로 천상계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kMpgw8uCZY
https://www.youtube.com/watch?v=cnSvUjwvZZs
클래식의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반하다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재즈 피아니스트의 관계는 미묘한 부분이 있다. 그들은 같은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분명히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연주가 품고 있는 정체성도 다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리스펙트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시기질투를 하거나 평가 절하를 하기도 하면서 투닥거리는 것이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재즈피아니스트, 그리고 그 각각의 리스너들이다.
그렇다면 100년도 더 이전에 태어난 호로비츠는 어땠을까. 그 시기에는 아마 추측컨데, 지금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보수적이고 베타성이 강했을 것이다. 심지어 재즈는 흑인들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시기였고, 인종차별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었을 점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재즈를 받아들이기는 더욱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순수하게 실력으로 세기의 거장 호로비츠의 마음을 뒤흔든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이름부터 예술인 남자 - Art Tatum이다.
니가 그렇게 피아노를 잘 쳐?
1930년대,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던 젊은 호로비츠는 그의 연주를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을 편견없이 탐구하고, 실험하는데에 한참 몰두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침 뉴욕으로 넘어와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던 아트 테이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된 호로비츠는 그가 연주하는 클럽에 방문을 하게 된다. 이 일화는 1980년대 말, 사망하기 직전에 있었던 호로비츠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회고로 알려졌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아트 테이텀이 연주하고 있던 뉴욕의 작은 클럽에 방문한 호로비츠는 그 때 당시 Vincent Youmans이 작곡한 'Tea for Two'라는 곡에 흥미를 가지고 연습하고 있었는데, 테이텀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나서 무대에 올라 그 곡을 한 번 연주해보면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클래식이 아닌 재즈 곡으로써 아트 테이텀의 의견이 궁금했던 호로비츠는 자신의 연주 뒤에 아트 테이텀에게도 한 번 연주를 해봐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 테이텀은 곧바로 무대로 올라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테이텀의 그 연주는 젊은 호로비츠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호로비츠가 테이텀이 연주한 버전의 편곡 악보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테이텀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거 그냥 즉흥적으로 편곡해서 친건데요?
호로비츠는 그 때 그 순간 이후로 다시는 공공장소에서 'Tea for Two'를 연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이 내용은 호로비츠가 훨씬 먼저 세상을 떠난 아트 테이텀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얘기한 내용이겠으나, 그만큼 그때의 그가 느꼈던 테이텀의 연주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ACt0FM0Kf8
지음이 되다
그 이후로 테이텀의 연주에 깊이 빠진 호로비츠는, 급기야는 본인의 장인어른이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모시고 또 다시 테이텀의 작은 클럽에 방문하게 되었고 토스카니니 또한 테이텀의 연주를 듣고 엄청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연이 닿게된 두 거장은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장르와 인종을 뛰어넘어 순수한 음악으로 이루어진 두 거인들의 인연은 너무나도 순수해서 아름답고, 존중받을만 하다.
마지막으로 호로비츠의 짧은 'Tea for Two'를 실으며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ImSM3E0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