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대략 10여년 전. 미국의 초대형 커뮤니티인 [Reddit]에 혜성처럼 등장한 한장의 월 페이퍼가 있었다.
NeokratosRed 라는 유저가 제작한 [Hands according to composers - 작곡가에 따른 손]이 바로 그것인데, 업로드 즉시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과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으며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클래식 좀 들어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봤을 그 월페이퍼!
바로 이것이다.
나 또한 처음 봤을 때 굉장히 흥미가 돋고 또 공감되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여기 등장한 16명의 인물들을 다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아쉽게도 특히 현대음악쪽으로 오면서부터는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중에 직접 찾아보니 그들 또한 나름의 핵심을 잘 짚어 유쾌하게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실제로 그들의 곡을 보면서 이 그림들이 얼마나 찰진 비유인지 연대 순으로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여기 나온 모든 작곡가들을 좀 더 딥하게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위의 이미지가 얼마나 재치있게 그들을 표현했는지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어 간단하고 스피디하게 넘어가보려고 한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03.31 - 1750.07.28]
대망의 첫 타자는 바로 '음악의 아버지'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1위'로 많은 이들이 손꼽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이다. 거의 400년 전의 인물로 무려 국적이 '신성 로마 제국'. (한반도에서는 명성왕후의 아들인 숙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였다.)
연습곡으로 인벤션, 신포니아, 클라비어 곡집 등 '건반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낳았을 뿐 아니라, 수백곡의 코랄, 토카타와 푸가, 마태수난곡 그 외 유명한 것들만 꼽아도 다 세기도 힘들 만큼의 다작을 하였다.
본인도 글렌 굴드가 1955년에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가장 좋아하는 건반곡 top 10 안에 꼽을 만큼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기계손으로 되어있는 이미지를 보면서 바로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가 와닿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gOcTfi9AtRM
이미지의 원작자 NeokratodsRed는 바흐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를 남겼다.
Robot Hands because he was so structured and calculating in his pieces.
(그의 작품은 매우 체계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에 기계손으로 표현하였다.)
아마 바흐의 카논(Canon)이나 푸가(Fugue)를 들어봤다면 이 체계적이고도 계산적이라는 멘트에 납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카논 형식은 위에서 언급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내에서도 심심치않게 나올 뿐만 아니라 바흐의 음악세계 곳곳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Bach Visualization이라는 키워드로 찾아보면 그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보는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HQ2ybTejU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01.27 - 1791.12.05]
아마 클래식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단 한사람만 꼽으라고 하면 결국 모차르트이지 않을까?
그를 표현하는데에 있어서는 단 두 글자 그리고 두 단어면 충분하다. 신동. 그리고 천재.
인류 역사상 별처럼 빛나는 대작곡가들은 많이 있었지만, 모차르트처럼 짧은 시간 불타오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휘어잡았던 사람은 단언컨데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원작자는 그런 모차르트를 '밀대'로 표현했다. 왜, Why?
https://www.youtube.com/watch?v=4xeAsc6m35w
모차르트의 음악, 특히 피아노곡들에서는 유쾌함이 느껴지는 쉼 없는 스케일들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가장 널리 알려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이나, 작은별 변주곡을 한 번 들어보자. 그리고 나면 마치 이런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모차르트의 스케일 활용을 보고 밀대로 표현했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2.16 - 1827.03.26]
분명히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하게 연식(?)순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이 나와버려서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 위대함에 압도당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바흐, 모차르트와 함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세명을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들어가야하는 사람이자, 본인이 클래식에 입문한 이후로 단 한번의 순위 변동도 없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작곡가를 꼽으라고 하면 무조건 1위로 꼽을 수 밖에 없는 그 사람.
바로 베토벤이다.
앞의 바흐나 모차르트도 물론 마찬가지이지만,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너무나도 광활하고 깊어 사실 한가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특히나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악상을 펼쳐나감에 있어 최고 정점을 찍은 인물인 만큼 굉장히 길고 장대한 편성을 가진 음악도 단 한순간의 지루함 없이 사람들을 압도하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1795년부터 1821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6년의 시간동안 베토벤의 음악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게 변해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구약성서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과 더불어 피아노 곡의 신약성서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고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드뷔시와 케이지,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바흐를 포함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직관적으로 잘 어울리는 표현top5에 들어갔던 게 바로 베토벤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힘이 넘치고 강렬한 '망치'
NeokratodsRed가 그 예시로 꼽은 베토벤 피아노 소타나 29번 함머클라비어를 한 번 감상해보기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wZsDzGY1XA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01.31 - 1828.11.19]
31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 오스트리아 출신 '가곡의 왕' 슈베르트. 사실 음악적으로 다른 대작곡가들에 비해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독창적이고도 아름다운 선율과 거기서 탄생한 632곡의 가곡들 만큼은 가히 '왕'다운 대접을 받을만하다. 클래식을 특별히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슈베르트의 '마왕'이나 '송어'는 워낙 유명하고, 정규교육과정에 포함이 되기도 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곡일 것이다.
비록 짧은 생이지만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개척한 것으로도 평가받는 그의 삶에는 '진짜 낭만'이 가득하다.
너무나도 가난한 가정형편에 16명의 형제중 9명은 10살을 채 넘기지 못한채 죽었고, 본인도 누구보다 열렬히 음악가로서의 삶을 추구했지만 정작 피아노조차 죽기 1년전에야 처음으로 구매를 해서 집에 두었을 만큼 그의 음악 인생은 쉽지 않았다. 피아노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주로 기타를 활용해서 작곡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슈베르트의 피아노 실력은 정말 초보적이며, 그의 피아노 곡들도 악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연주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정도.
학창시절에는 '2인자 콤플렉스'로 억까를 당하는 그 유명한 '살리에르'에게서 음악 이론을 공부하며 베토벤, 리스트, 체르니 등등의 거장들과 명목상이라도 사형제가 되기도 했다.(물론 살리에르가 음악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워낙 가르친 사람이 많기는 했다만...)
특히나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열렬한 추종자로, 베토벤과 연관된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기도 하다. 하루는 평소 자신의 우상이던 베토벤과 우여곡절 끝에 짧은 만남을 가졌는데, 베토벤이 슈베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보며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정확히 일주일 뒤 베토벤은 사망하였고, 크게 낙심한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는 음악가들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베토벤 사망 이후 단 1년만에 슈베르트도 사망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낭만적인 일화가 전해져온다. 혼수상태를 헤메고 있던 슈베르트가 '묻혀지는건...홀로 남는건 싫어...'라고 중얼거리자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형이 '걱정말으렴. 모두 널 걱정해서 모여있단다.'라고 했는데 갑자기 슈베르트가 '하지만, 여긴 베토벤이 없어!' 라는 말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채 사망한 것.
그리고 슈베르트는 음악의 거장들이 대거 묻혀있는 빌 벨링크 공동묘지에 베토벤 바로 옆자리에 안치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어디 슈베르트 같은 누군지도 모르는 허접한 작곡가를 감히 베토벤 곁에 묻느냐는 반대도 많았지만, 주변 인물들의 많은 도움과 베토벤이 마지막 만남에서 슈베르트를 인정해줬다는 점등을 들어 무사히 그의 우상이던 베토벤 옆에 안치될 수 있었다. 모차르트를 사랑하던 베토벤은 그 옆에 묻혔고, 그런 베토벤을 숭배하던 슈베르트는 또 그 옆에 묻힌 아름다운 삼각편대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슈베르트를 나타낸 단촐한 왼손과 톱니바퀴 모양의 오른손을 두고 NeokratosRed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Very articulated right hand passages', 'Really easy left hand ones.'
슈베르트의 즉흥곡 2번을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pGbh_oAwuOE